요한계시록 4장: 영원히 지속되는 하늘의 예배

해설:

2장과 3장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말씀을 기록한 다음, 4장부터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환상을 기록합니다. 4장부터 22장까지 기록된 환상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기록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계시이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일어날 일들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 모든 것은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차원의 일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직접 보고 들었던 사도 요한 조차도 보고 듣는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주님의 명령을 받고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할 수 있는대로 정확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천년 후에 우리는 사도 요한의 기록을 읽습니다. 그가 보고 들은 것 중에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지난 세월 동안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고 해명하려고 노력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의 노력은 대부분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원천적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해명하려 하다가 잘못된 길로 빠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환상들은 하나 하나 해명하려 하기 보다는 전체를 하나의 그림으로 보고 그 그림이 전해 주는 의미를 느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4장은 사도 요한이 본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환상을 보았을 때 사도 요한에게 계시의 문이 열립니다(1절). 그는 처음부터 들었던 그 음성의 부름을 받고 그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것을 사도는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었다”(2절)고 표현합니다. 사도는 환상 가운데 하나님의 보좌를 봅니다. 하늘의 보좌에는 성부 하나님께서 앉아 계셨는데, 그분은 “마치 벽옥(다이아몬드처럼 생긴 반투명한 돌)이나 홍옥(불타는 듯한 붉은 돌) 같은”(3절)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영광이 사도의 눈에 그렇게 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둘레에는 무지개가 둘려 있었고 스물네 개의 보좌가 있었는데 장로 스물네 명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는 금 면류관을 쓰고 그 보좌에 앉아 있었습니다(3-4절). 무지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열둘, 혹은 열둘의 배수는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스물 네 장로가 쓰고 있던 “금 면류관”(4절)은 “이기는 자”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보상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 보좌로부터 번개가 치고 음성과 천둥이 울려 나오고, 그 보좌 앞에는 일곱 개의 횃불이 타고 있었습니다”(5절)라는 말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권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보좌 앞은 마치 유리 바다와 같았으며, 수정을 깔아 놓은 듯 하였습니다”(6절)라고 했는데, 그것도 역시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의미합니다. 

이어서 사도는 그 보좌 가운데와 둘레에 있는 네 생물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에스겔이 환상에서 본 것과 유사합니다(겔 1장). 네 생물이 “앞 뒤에 눈이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6절)라는 말은 그들이 전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각각 사자, 송아지, 사람 그리고 독수리와 같은 모습의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며 날개 둘레와 안쪽에도 눈이 가득했습니다. 이것도 역시 전지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네 생물은 보좌를 향해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십니다, 전능하신 분, 주 하나님!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며, 또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8절)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본 네 생물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지의 능력을 가진 네 생물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며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영원히 지속되는 그들의 활동이었습니다. 스물네 장로는 그 생물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이 쓰고 있던 금 면류관을 벗어서 보좌 앞에 내어 놓습니다(9-10절).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스물네 장로는 한 목소리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선포하며 찬양과 영광을 올립니다(11절). 바로 이것이 하나님 나라에서 끊임없이 그리고 영원히 계속되는 완전한 예배입니다. 

묵상: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고 하나님의 보좌를 보는 영예를 얻습니다. 우리 영의 눈이 가려져서 보지 못하는 영적 실체를 보게 된 것입니다. 물질주의에 갇혀 있는 우리는 현미경과 망원경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지금 우리가 보고 만지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세상이 있음을 증언합니다. 그 세상을 보고 나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상은 너무도 작아 보이고 또한 덧 없어 보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옷처럼 낡아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를 믿기에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유혹과 환난과 박해를 견디면서도 끝까지 견디고 이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지속되고 있는 예배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하지 않을 동안에도 하나님의 보좌에서는 예배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자주 손을 멈추고 하나님의 보좌를 생각하며 영원한 예배에 참여해야 합니다. 

잠시 눈 감고 그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예배를 상상합니다. 그 놀라운 예배에 참여할 것을 상상합니다. 이런 영광과 영예를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립니다

2 thoughts on “요한계시록 4장: 영원히 지속되는 하늘의 예배

  1. 사도 요한을 통한 오늘 하늘 나라의 예배가 내 지식과 지혜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고있는 예배를 상징하는 거 같습니다.
    형식보다는 진정과 진실로 예배에 임하기를 원하시는 거룩하신 하나님, 내 마음을 다해 경배드리고 삶으로 산 제사를 드리기를 원합니다, 영원 무궁하신 하나님,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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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들 보든대로 보는 것도 복이요, 못 보는 것을 보는 것도 복입니다. 하지만 다른 복입니다. 남들과 같은 것을 경험하면 서로 이해하고 통하는 것이 쉬워져서 좋은데 못 보는 것을 보면 설명을 잘 해 주기가 어렵고, 설명해 주어도 상대방이 안 들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목사님들의 설교가 한 예입니다. 듣는 교인과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설교 – 아멘이 터져 나오는 -가 위로와 활력을 주는가 하면, 겉의 현상이나 단기적인 처방이 아닌 깊이를 갖고 전하는 메세지는 “어려워!” “설교대로 살 수 있나?” 하면서 외면해 정작 들어야 하는데도 들리지 않는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계시록이 없는 성경책을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는데 정신이 팔려 피곤한 몸과 마음으로 반쯤 깨어 있고, 반쯤 조는 상태로 지내다 번개가 번쩍하며 천둥소리에 놀란듯 마지막 챕터에서 반전을 맞이합니다. 계시록의 환상은 이해와 공감을 요구하는 책읽기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 너머 광대한 우주와 역사 안에 티끌 같은 존재 임을 확인시켜 줍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 보니 어릴 때 알아 맞추기 놀이를 할 때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 부터 묻던 것이 생각납니다. 내 중심의 일상, 인간 위주의 드라마가 매일 매일 돌아가는 별을 떠나 우주 속으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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