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50편: 참된 예배

해설:

이 시편은 아삽의 시로서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1-6절까지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7-23절에는 심판자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시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심판을 위하여 온 세상을 불러 모으시는 모습을 그립니다(1절).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시온에서부터 영광과 권능, 엄위로 나타나셔서 모든 민족 앞에서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십니다(2-6절). 

하나님은 “나는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으로 심판을 시작하십니다(7절). 이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바친 제물에 대해 문제 삼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8절).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해서 제사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9절). 그분은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소유주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10-13절). 그분은 홀로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감사의 제사입니다(14절).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와 찬양을 받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환난의 날에 당신을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요 하나님은 그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15절).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물질의 제물에 대해서는 정성을 다했으나 정작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제사는 풍성 했으나 그들의 삶은 부패했습니다. 16절의 “악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풍성한 제물을 바치기는 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고 삶은 부패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전파하며 언약의 말을 입에서 읍조립니다(16절). 하지만 그들은 “내 교훈을 역겨워하고, 나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는”(17절)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도둑과 친구가 되고 간음하는 자와 한 패가 됩니다(18절). “입으로는 악을 꾸며내고, 혀로는 거짓을 지어내었”(19절)습니다. 동기간조차 사랑하고 돌보지 않았습니다(20절).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을 지켜 보면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서기 까지 참고 기다리셨습니다(21절).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해하고 그분을 만홀히 여깁니다. “내가 너희와 같은 줄로 잘못 생각하는구나”(21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죄악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라엘이 쌓은 죄의 분량이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행동을 시작하시면 무서운 심판이 내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팔을 드시기 전에 한 번 더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22절) 라고 부르십니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그리고 절기 때마다 영광스러운 제사를 드리고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고 부지런히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을 잊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모든 것이 형식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제사는 풍성했지만 마음은 떠나 있었고 삶은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고”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23절)을 찾으십니다. 마음이 없는 제물은 역겹고 거룩한 삶이 따르지 않는 제사는 위선입니다. 

묵상:

오늘의 시편을 읽으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돌아 봅니다. 우리의 신앙이 혹시 마음은 없는 형식은 아닌가 반성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삶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 “악인들”(16절)에 속합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을 잊은 자들”(22절)이라는 책망을 들을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예배에 진실한 감사가 담겨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위로 받고 축복 받기 위한 자기 중심적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고 내면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감사로써 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예배에 바치는 정성 만큼이나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정성을 쏟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 봅니다. 우리의 말씀 묵상이 우리의 양심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열매 맺고 있는지, 스스로를 심판해 봅니다. 

오, 주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의 예배가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 나오는 것이 되게 하소서! 우리가 드리는 예배 만큼이나 우리의 삶도 거룩해지게 하소서

4 thoughts on “시편 50편: 참된 예배

  1. 아무 부족 한 것이 없는 주님께 바치는 모든 것들이 마움에서 울어나오는 정성이 되게 하시고 형식에 매달리는 어리석음을 불쌍이 여겨주시고 재난의 날에 주님을부르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다 끊이지 않게 도와주십시요 주님.
    예배에 참여할 때마다 감사하는 마움과 진정과 실령한 마음으로 드리며 드리는 예배가 내 삶에 그대로 반영되도록 기도를 드립니다.
    오늘 하루의 생활도 예배의 마음으로 점철되도록 이끌어 주실 것을 기도하며 감사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Like

  2. 고등학교를 마친 뒤부터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 아들을 놓고 늘 기도합니다. 그가 믿음과 교회를 분리해 생각하게 된 까닭도 알고, 교회의 역할이나 존재의미를 물으면 제 답이 궁할 때도 있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이 교회에 나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냐고 되물으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한번씩 답답하고 불만스럽다가도 교회에서 받은 것, 배운 것이 얼마나 큰지, 일상의 삶 자체가 예배인 것은 맞지만 공동의 예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묵상하며 경험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또 다르기에 아들이 이것을 경험하고 교회를 이루어가는 기쁨에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늘 기도합니다. 오늘 시편을 읽으면서 제 마음을 또 점검합니다.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 최상의 상태로 드리는 예배인지. 마음의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예배인지. 하나님께 나를 먼저 맞추고 이웃과 나의 관계 또한 바로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예배인지. 개인의 죄와 사회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예배인지. 예배에 대한 생각과 바램이 서로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이 중심에 계셔야 함은 분명합니다. 내가 있는 곳, 하는 말, 가진 생각, 올리는 기도…한 가운데 하나님이 계신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요.

    Like

  3. 모든것이 주님의 소유입니다, 우주의 하나님 이시고 창조주 이십니다.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저희들의 영혼이 주님께 예배 들이기를
    원 합니다. 오늘의 삶이 주님께 들이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4. 삶으로 고배해야 하는 복음

    많은 교회가 있지만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얼마나 될까 하는 궁금함이 있습니다. 교회에 헌신하며 목회자에게 잘하면 물질 축복을 받고 자녀도 잘 된다는 말에 안수기도 한 번 받으려고 줄을 서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인간이 약하긴 약한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8절 ) 하신 말씀에 눈길이 멈추게 됩니다.

    예배의 모양과 형식은 있지만 속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예배의 자리에서 손들고 찬양 드리고 준비해온 예물도 드리지만 속사람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선교사님들이 파송되어 있지만 삶을 통해 증거되는 복음이 아니기에 속이 찬 결실을 얻는 것이 아닌 일시적 속빈 사람들만 머물다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되는 것은 진실된 마음은 희생을 통해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제사의 형식은 있지만 진실이 결여된 것을 책망하시는 하나님께서 짐승이 흘린 피를 자신의 것으로 보지 않기에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말씀하셨음으로 받아 드리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것은 내 죄값의 댓가인 그 죽음을 이 짐승이 대신 치러 죽었음을 마음으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짐승의 피를 바라보며 아무런 감동이 없는 제사는 예배의 형식은 있지만 속사람을 변하게 하지 못하는 예배와 다를 것이 없다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의 속사람이 조금씩 이나마 예배를 통해 믿음의 진보를 이룰 수 있을까요. 희생을 감사하는 것에서 시작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셨다 생각합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생각하며 죽을 수 밖에 없었던 나를 살리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모임이 예배가 되어야 함을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희생해 주셨음을 감사하는 것이 예배의 자리에서 이루어질 때에 그 예배를 통해 진정한 속사람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을 말씀해 주셨다 생각합니다. 그것이 예배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손들고 찬양하고 마음에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리고 준비한 예물을 드리고 돌아오는 것이 끝이라면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닌 교회를 방문하고 온 것 밖에 아닐 것 같습니다.

    주님의 희생에 감사하는 예배를 통해 나의 속사람이 변화 되었다면 나도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이것이 삶으로 고백되는 말씀이고 복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골목마다 교회가 들어서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모이지만 주님의 피가 내 것으로 보이지 않기에 예배는 드리지만 진정한 희생의 감사가 없는 것 같습니다.

    축복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예수요 교회라면 교회 수는 많아질 수 있고 교인 수도 많아질 수 있겠지만 진정한 변화를 통해 이루어 지는 삶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지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진정한 감사의 예배가 주님을 통해 이루어 진 것이라면 진정한 감사의 표현은 나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 드리며 오늘 하루도 그리스도의 희생에 감사 드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희생할 수 있는 삶을 통해 고백하는 복음을 전하리라 다짐해 봅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